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티 매튜슨 (문단 편집) === [[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|뉴욕 자이언츠]]의 에이스 ===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매튜슨은, 1901년 만21세의 나이로 ERA 2.41에 20승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하였다. 하지만 이 젊은 투수가 얼마나 오래 활약할 지 의문이었던 감독은 유격수와 외야수 연습을 지시했지만, 자이언츠로 온 감독 [[존 맥그로]]가 이를 중단시켰다. 그 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매튜슨은 '''매년 22승 이상'''을 기록하는 투수가 된다. 1905년에 다승, ERA, 탈삼진에서 1위를 달성하며 투수 부문 [[트리플 크라운]]을 차지했고, [[1905년 월드 시리즈|같은해 월드 시리즈]]에서는 [[오클랜드 애슬레틱스|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]]를 상대로 '''1차전 4피안타 완봉승, 이틀 후 4차전 4피안타 완봉승, 3일 후 5차전 6피안타 완봉승'''을 기록하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다. 그리고 [[2014년 월드 시리즈|109년 뒤]]에 [[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|똑같은 팀]]에서 [[매디슨 범가너]]가 나왔다. 다음 해인 1906년에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고생했으나 ERA 2.97에 22승-12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.[* 조정 ERA는 88] 물론 병이 나은 다음 해 1907년에 다승왕, 탈삼진왕을 차지하고 1908년에 또 한번 [[트리플 크라운]](...)[* 이 때 트리플 크라운 뿐만 아니라 '''출장수, 선발 출장수, 완투, 완봉, WHIP, 심지어 세이브까지 전부 1위를 해먹었다,말 그대로 다 해먹은거다'''] |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20px-Christy_Mathewson_1913.jpg]]|| || 1913년, 뉴욕 자이언츠 || 그러나 그 해 페넌트레이스는 통과하지 못했다. 1908년은 바로 [[시카고 컵스]]가 우승한 해(...) 그 다음 해 1909년에는 아깝게 2승 차이로 다승왕을 놓쳤지만 '''ERA 1.14'''와 승률왕을 기록하였다. 특히 1.14의 평균자책점은 밥 깁슨의 1.12에 이은 역대 5위. 데드볼 시대라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하지만 조정 ERA로도 222다. 그 다음 해에는 다시 한번 다승왕을 차지하고 1911년에는 [[루브 마쿼드]][* 본명은 리차드 윌리엄 마쿼드(Richard William Marquard). Rube(시골뜨기)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통산 201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좌완투수]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[[1911년 월드 시리즈|월드 시리즈]]에 진출했으나 둘 모두 [[프랭크 베이커]][* [[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]]와 [[뉴욕 양키스]]에서 뛰었던 3루수로 홈런왕의 시초격 되는 인물이다. [[홈런 베이커]]라는 닉네임이 더 유명할 정도.]에게 결승홈런을 얻어맞고 우승 문턱에서 패배한다. 다음 해 1912년에 또 다시 [[1912년 월드 시리즈|월드 시리즈]]에 진출한다. 상대는 [[보스턴 레드삭스]]. 매튜슨은 '''3경기 3완투 ERA 0.94'''라는 환상적인 투구를 보여줬지만, 야수들은 이에 전혀 보답하지 못해 실책을 연발하면서 '''0승 2패'''로 고배를 마셨다(...) 1913년에 다시 [[1913년 월드 시리즈|월드 시리즈]]에 진출하여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'''2완투 1완봉 ERA 0.95'''를 기록하였으나 1승 1패에 그쳤고, 팀은 다시 우승을 놓쳤다. 그나마 정규 시즌에서 다시 한번 평균자책점왕을 기록한 게 위안. 1914년 시즌에 겨우 33세의 나이로 365승을 거두었고, 승수 페이스를 봤을 때 2년안에 [[사이 영]]과 [[월터 존슨]]만이 도달했던 400승을 거둘 전망이었다.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정상급 시즌이었다. 사실 1914년 시즌도 표면적으로는 312이닝과 24승이란 대단히 우수한 시즌이었지만, 그 이면에 리그 '''최다 실점에 최다 피홈런'''이라는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.[* bWAR로 보면 전년도 '''7.1에서 0.4까지''' 수직하락했다.] 그리고 바로 다음해부터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며 이듬해에는 100이닝도 못채우고 그대로 은퇴했다. [[로이 할러데이]]의 케이스처럼 십수년동안 누적된 피로수치가 갑자기 터진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